UFO 를 구한다는 의사전달을 채널러를 통해서 하는 방법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
다시 시도? 내가 직접…;;
전에 시도를 했지만 기다리던 외계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까지만 해도 심심찮게 눈에 띄던 UFO 들 마저도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내가 UFO 를 가장 많이 목격했던 시기는 2010년 말에서 2011년 여름까지이며 그 짧은 기간동안 자그마치 20여 차례나 목격할수 있었다. 매월 2 차례 정도라고 할수 있겠다. 그런데 그 후로는 가물에 콩나듯이 다 합쳐도 2~3 차례 정도 밖에 목격하지 못했다가, 맨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것은 2012년 꼭 이맘 때였다. 그 후로 현재까지 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목격하지 못했다.
UFO 를 구하는 일을 진실로 이루고 싶었던 시기는 2011년 이맘 때 정도부터 2012년 말 정도까지였다. 진지모드로 돌입하자 외계인들은 슬슬 피하다가 결국 뽀큐를 날리고선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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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s) 이니, 내면의 영적인 힘을 믿으라느니,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뇌의 10% 정도 밖에 사용을 못한다느니 등등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뿌듯하게 세우는 구호들로 가득찬 책들은 다양하고도 많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런 이론들은 UFO 구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당시 산좋고 물좋아 수련하기에 좋은 강원도 태백의 대자연에서 내면의 영적인 힘을 다 쏟아 부었고,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거했고, 자그마치 뇌의 10.000001% 나 사용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경련까지 하면서…
“나는 자연인이다. 아.아니 UFO 가 필요한 인간이다.”
라고 우주를 향해 떵떵 소리를 쳤는데 돌아오는 메아리는 이것이었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책과 실상은 다르다. 다만 도서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서 귀에 솔깃한 미사여구가 필요할 뿐이다.
내가 책들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UFO 구하는 일과 곰인형 구하는 일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왜?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근원 창조주와 연결된 내면의 영적인 힘으로 끌어당기는데 그까이꺼 흔해빠진 UFO 한대쯤 안 끌려오겠냐는 것이었다. 만약 그 사실을 영성계 출판사에서 알았다면, 전직원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 바람에 업무가 잠시 마비되었을듯 하다.

“참나는 본래 근원의 마음이며, 영적 실상의 근원은 내면의 ‘참나’ 로서 어떠한 다른 근원에 의존하지 않는 창조의 근원이다. 자석에 달라붙는 철가루처럼 자신의 의지에 의해 긍정적인 것들이나 부정적인 것들이 끌려오게 되는데, 수행과 깨달음으로 자신의 의지가 참나와 하나됨으로 본래 근원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 …”

나는 위와 같은 식의 영성인들이 입버릇처럼 사용하는 틀에 박힌 말에 전에는 거의 알레르기 증상을 보일 정도까지였다. 요즘은 적응이 되어서 그냥 옆집 개가 짖느니 하고 있지만 말이다.
간단한 걸 가지고 저런 식으로 장황하고 어렵게 설명하는 일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성계 강사들이나 출판사들이 즐겨하는 것인데 대부분의 영성인들은 그걸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다.
간단히 줄이면 이거 아닌가. “진실된 의도로 살라.”
그들이 진실되게 의도하는 바, 세상이 가져다 준 거짓된 자아에 대한 집착과 망상을 벗어나 참나와 하나되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요, 반드시 먼 미래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죽을 때 저 세상으로 가면 깨닫기 싫어도 깨닫게 된다.

이제 그 ‘진실된 의도’ 라는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진실되게 의도한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질까? 글쎄다. 내가 보기에는 진실되게 의도하는 것은 그저 시작할 때의 준비 과정들 중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진실되게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일까? 글쎄다.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실패하는 일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게 현실인듯 하다.
일례로 주위에서 가게를 차려서 성공하는 창업자의 비율은 극히 낮다는 사실을 발견할수 있다. 대부분 가게 임대료와 대출금 이자 내기에 급급한 수준이거나 적자운영에 허덕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게를 접는 실정이다. 그 많은 소자본 창업자들이 진실되게 의도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했던 것일까? 내가 알고 있기로는 대부분의 창업주들은 퇴직금이나 부동산으로도 창업비가 부족해서 대출까지 받아서 사업을 시작할 정도로 그 의도는 진실되면서 간절했다.
그래 불경기 탓이겠지. 그리고 그 ‘진실한 의도’ 라고 하는 것은 경기순환주기 앞에서는 맥도 못추는 무기력한 것이구나!

한편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일들 중에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무작위로 벌어지는 일들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내 기준으로 좋은 일들도 있고 나쁜 일들도 있다.
일전에 나는 양천구의 어떤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이웃 집의 합기도와 요가로 잘 단련된 육감적인 여대생이 속옷만 입거나 나체로 생활하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어 무척 좋았다. 또 일전에는 강원도 태백의 어떤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얇은 벽 하나로 마주한 옆집에서 아랫배가 불룩나왔고 인상들도 하나같이 고약하게 생긴 중년남자들 몇명이서 내는 쿵쿵거리는 소음을 매일 듣게 되어 무척 나빴다.
나는 처음에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집을 소개받을 때만 해도 이웃 집의 그 여자나 옆집의 그 중년남자들에 대해서는 의도는 커녕 아예 생각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로 코앞으로 오게 되었다.
이런 걸 가지고 전생의 카르마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성인들 꼭 있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전생에 그 여자가 부르면 달려가서 벌거벗고 춤 추기라도 했었나 보다. 또 그 남자들을 잡아서 고문실에 가둬놓고서는 매일 발로 이마를 사정없이 내려치기라도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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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상은 ‘무작위’ 이다.
인과론으로는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떤 종류의 나쁜 일을 당하는 벌을 받고 있다면, 그 원인에 대해 피드백에 피드백을 거듭하다보면 처음부터 그 종류의 나쁜 일을 선택하여 저지를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이 우주에 탄생했다는 결론이 도출될 뿐이다. 인과론에서는 소위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 가 들어설 곳은 없다.

다시 ‘진실된 의도’ 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조직폭력배 집단이 참나와 합일된 진실된 의도가 있어서 세력을 확장하고 부를 누리게 되는가? 경쟁자들을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횟칼로 난도질해서 말이다.
기업에서 본래 근원의 마음인 진실된 의도가 있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가? 말도 안되는 판촉비같은 비용들은 모두 소비자 측으로 전가하고서 말이다.
칼만 들면 강도인 기업체 임원들과 실재로 칼 들고 설치는 조폭들은 비록 더러운(?) 인간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성인들이나 종교인들 보다는 낫다. 왜 예수가 당시 종교와 영성 지도자 계층에 속하는 진실된 의도를 가진 바리새인들을 막 나가는 강도들이나 창녀들보다 폄하하면서 심지어 뱀과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욕지꺼리를 퍼붓고 상종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겠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무작위다. 진실된 의도랑은 전혀 무관하게 무작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무작위 사건들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벌어지는 일들을 가급적 최소화하도록 하여 목표에 최대한 집중시켜야 한다.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파악, 미래에 발생할 갖가지 변수들까지 감안한 정교한 계획 그리고 결단력있는 실행으로 목표를 달성할수 있다. 그게 바로 조폭집단이나 기업의 생존방식이다. 그리고 거기에 정당하거나 불의한 개념이 자리잡을 곳은 없다.
비록 나쁜 수단으로 달성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째튼 ‘진실된 의도’ 는 필요하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진실된 의도는 일의 성사여부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나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 에 의하면 무작위로 발생되는 일이란 결코 있을수 없어야 하는데 왜 대부분의 일들은 무작위로 발생하는 것일까? 또 ‘에너지 보존 법칙’ 에 의하면 그 ‘근원 참나와 합일된 진실된 의도’ 라고 하는 에너지는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우선 무작위로 발생되는 일은 원래 그 자체가 그런거다.
왜냐하면 신은 주사위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 주사위는 우주의 창조까지 가능한 엄청난 수준의 외계인이 던진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개인적인 수준과 등급이 각각 다르듯이 외계인들도 마찬가지다. 그 외계인은 ‘우리 우주 창조자’ 이자 우리 우주 최상의 존재로서 인간들의 입장에서든 우리 우주의 다른 외계인들 입장에서든 가히 신 중의 신이다.
그 창조주가 우리 우주를 설계한 기본 원리는 ‘카오스(chaos)’ 이며, 기본 흐름은 ‘엔트로피(entropy)’ 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 는 말은 다른 우주들에서는 통할수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우리 우주에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그것을 바로 정정하면 이렇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개판된다.’
일례로 집을 단 1년만 비워둔 채 나중에 돌아오면 집안이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우주에 살고 있는 한 무작위로 발생되는 혼란의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단히 주변환경을 개선해 나가야만 한다. 그런 이유로 외계인들은 ‘정체는 곧 죽음’ 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얼핏 ‘원인과 결과’ 라는 측면에서 볼때 도무지 성립될수 없어 보이지만, 우리 우주 창조주가 던진 주사위가 그 원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우리 우주는 최초 설계자에 의해 그렇게 설계되었던 것이다. 만약 우리 우주 창조주가 그 설계를 뜯어고쳐 새롭게 다시 설계한다면 상식과 지성 그리고 화합이 통하는 행복셀로나, 아니 행복우주가 될수 있겠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우주 창조주들이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모험을 감행했다고 칭찬을 받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 의도 에너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체적으로 상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근원 참나 (False) + 진실된 의도 (True) = 똔똔’ 이라는 ‘5thDim신인류 공식’ 에 의해서…
영성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면의 근원이나 참나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영성인들은 근원이나 참나가 마치 과일 속의 씨앗과도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무슨 참나나 근원이 장소 따져가며 그렇게 꼭꼭 숨어있겠는가? 굳이 참나나 근원을 언급하자면 씨앗, 과육, 껍질 뿐만 아니라 벌레까지 포함하여 모든게 근원이나 참나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가져다 준 거짓 자아라고도 하는 것도 근원이요 참나에 포함된다. 다만 일시적인 오류가 있는 부분일 뿐…
따라서 ‘수행으로 거짓 자아를 벗어나서 참나와 합일한다’ 는 말은 성립될수 없는 틀린 명제다. 그것은 ‘노력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류를 하나 하나씩 개선해 나감으로써 한발자국 한발자국씩 진보한다’ 로 정정해야만 비로소 올바른 명제가 된다. 그리고 그 개선작업은 이 우주가 끝날때까지 수백조년 동안 해야 하는 장기적인 작업이다. 어질러진 것들을 하나 하나씩 정리해 나가면서 이해를 쌓아 나가는게 우리 우주에서 ‘진화’ 를 이루는 방식이다.

끌어당김의 법칙? 어디 한번 끌어당겨 보라. 끌려오는 건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똥오줌, 구토물, 먹다버린 음식물, 각종 부패물 등의 쓰레기들뿐 일테니. 재수없으면 핵 폐기물까지 끌어오게 된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부자 나라들인 미국을 위시한 다른 선진국들에서 풍요에 따른 넘쳐 흐르는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게으르게 탱자탱자 지내고 있는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한 책략이거나 복권판매나 도박 업체들의 농간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인해 그저 매일 먹고 살기에 급급한 작은 나라나 후진국 사람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있는 법칙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예외적으로 OECD 가입국 대한민국처럼 선진국 따라하기 병에 걸린 일부 국가들에선 크게 호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근데 요즘은 그것도 한물 갔나…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의 방식은 자석을 가지고 철조각들이나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딜가도 기다리고 있는 폭탄과 부비트랩을 피하면서 어떡하든 살아남는 것이다. 물론 그건 생산적인 삶이 아닌 소비적인 삶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어디서 온 존재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에너지적인 희생을 하고 있기에 돈도 못버는 백수라고 할수 있는 인간이 살아남을수 있다. 그 존재들은 바로 주위의 식물들과 동물들이며 인간은 그 존재들을 잡아 먹으면서 에너지를 섭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서까지 영성인들과 불교도들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 ‘생명을 빼앗는 육식은 좋지 않고 채식은 좋다.’ 라고 말이다. 영적으로 통찰할 때나 초월명상을 할 때 왜 거기서 식물을 뺐는지는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식물은 고통도 못느끼는 식물인간(?)인줄 아는 모양이다.
음식을 먹을 때 취해야 할 태도는 이것이다. ‘나를 위해 희생해 준 동식물들에게 감사한다.’
그점에서 볼때 적어도 식사예절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옳다고 할수 있겠다. 다만 그 감사를 동식물 존재들이 아닌 허황된 하나님에게 돌리는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인간들을 감찰하고 있으며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 나머지 독생자 예수를 구원자로 보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리만큼 진짜로 믿고 있다. 하마터면 나까지 걸릴 뻔 했던 그 집단최면에 대해서는 전에 내가 교회에 장기간 출석하면서 핵심 교인들을 포함한 많은 교인들과 어울렸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웃지 못할 실상이다. 그건 하나의 종교적 dogma 이며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곳에서 누구라도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는 충분히 가질만한 당연한 도리라고 여기면서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넘길수만은 없는 문제인듯 하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 이런 사실들은 현재 내 삶의 실상이 과연 어떤지를 시사하는 것일까?
– 또한 향후 삶의 방향설정을 하려면 어디로 지향해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일가?
– 그리고 UFO 를 구한다고 하는 단기적인 목표를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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